[세종학원 수강 후기]로 적극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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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재우 (59.♡.167.6) 작성일24-11-25 13:50 조회192회 댓글2건본문
[세종학원 수강 후기]로 적극 사용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부원장님과 루피쌤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고자 작성했습니다.
‘만에 하나’는 굳이 표현하자면, 이공계 식 표현으로는 0.01%로 아주 적은 확률입니다. 혹시 김칫국처럼, 2024년 12월 18일 저의 시험 결과가 원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흘러간다고 하더라도 이미 그 창피함을 식혀버릴 ‘다량의 도파민 분비’를 지난 토요일(2024년 11월 23일) 면접실에서 경험하였으니, ‘만에 하나’의 숫자놀음에도 후회 없이 이 [세종학원 수강 후기]를 작성하였습니다. 따라서, 2025년에 상담 차 또 나타날 저 같은 ‘본 바닥이 미천하거나 수줍음을 타는 자’를 위해 참고 자료로 적극 활용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었습니다.
상담자의 질문: 왜 세종학원에서 수강해야 하나요?
답변(망설임 없이): “땡큐포유어쾌스쳔”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서울에는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관광통역안내사의 수요도 증가하여 서울에도 많은 학원이 성업 중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인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학원을 추천해 드립니다. 왜냐하면, 세종학원은 크게 2가지의 ‘unique’ 한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원장님을 중심으로 유지되는 ‘끈끈한 공동체’ 및 동문의 정보교류에 의한 ‘집단지성’과 루피쌤의 탁월한 교수법을 갖춘 ‘독창적 문화’가 있습니다.
우선, 부원장님을 중심으로 하는 끈끈한 공동체의 형성이 있습니다.
세종학원 부원장님의 첫 만남은 2024년 5월 5일 오후 1시 ‘합격의 방’ 옆 상담실이었습니다. 그땐, 카리스마는 있지만 다소 냉랭한 상담 선생님인 줄 알았습니다. 마음속으로 ‘이런 분을 상담선생님으로 고용하면 사람들이 잘 안 올 텐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부원장님이 ‘관광통역안내사 시험 내용’의 제목을 가진 유인물을 제 쪽에서 읽을 수 있도록 보여주면서 반대편에 앉아 x축 대칭으로 1차, 2차 시험 일정을 숫자로 적어 가며 제가 그것을 읽을 수 있게 해주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매주 ‘월요일 오후’ 반에 등록했습니다. 제시해 주신 90% 이상의 합격률에 그만 그 자리에서 턱 결재했지만 어차피 제가 거주하는 곳에는 학원이 없으니 별도리 없이 넘겨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원장님의 배려심이 돋보였습니다. 첫인상의 기억이 빠르게 사라져 갔습니다. 시험이 다가오면서 체력 관리를 위해 제주도 감귤이 무한리필로 제공되고, 허기지지 않도록 다양한 떡들이 제공되고, 목탄 상황을 달래려 비타500이 작은 책상 위에놓여 있었습니다. 추가로 선배님들이 응원 차 많이 방문해 주셨습니다. 한국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가 ‘학벌’이지만 적어도 이 곳은 학교가 아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누구나 자의적으로 등록할 수 있는 ‘학원’이기 때문입니다. 샌드위치도, 음료수도, 간식거리도 모두 모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선배님들의 경험 공유가 커다란 에너지가 되었으며 ‘집단지성’의 형성 과정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루피쌤이 소개해 주신 6월 말 스탭 알바에서 선배님과 한 차에 배정되어 투어를 진행했었는데 이후 학원에 선배님이 응원 차 다시 방문해 주셔서 재회하는 기쁨도 누렸습니다. 소소한 행복이었습니다.
다음으로는, 루피쌤의 탁월한 교수법을 갖춘 ‘독창적 문화’가 더 큰 매력입니다.
2024년 5월 13일 처음 루피쌤을 수업 시간에 처음 만났습니다. 온라인에서 이미 수업 내용을 확인해서 그런지 익숙한 외모와 음성이었으며 이미지는 세계 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콜럼버스가 고향의 선술집에서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무용담을 들려주는 마법 같은 순간과 같았습니다. 새로 등록하신 분이 저 말고도 세 분이 더 계셔서 단체로 ‘월수 오후반’에 인사를 하고 반장님인 가람 님과 부반장님이신 지민님에게 안내 사항을 전달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도움을 주신 분들이 많이 계셨네요-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렇게 수업은 시작되었지만, 저에게는 1주일에 한 번 있는 수업은 이론적 확장 이외에도 ‘서울 나들이’여서, 경복궁으로, 진관사로, 중앙박물관으로, 종묘로, 서울숲으로 마무마구 돌아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5월 말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루피쌤이 수업 시간에 “11월 중순이 되면 여러분은 학원 분들과 ‘종묘의 중요성’을 아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어요!”라고 강의를 해 주실 때 사실 이 분야에 배경지식이 전혀 없었고 영어도 문법 위주의 콩글리쉬로 사용했던 제 속마음은 ‘반신반의’하며 시큰둥했습니다. 또한, “설마 그렇게 되겠어? 그냥 마지막까지 암기로 처리하겠지!”라고 반문도 했습니다. 그 후 얼마 안 되어 새로운 조가 편성되고 팀별 과제를 부여받았는데 같은 조원들이 모두 조용한 성격들이어서 제일 연장자인 제가 그냥 발표자가 되기로 했습니다. 6월 3일 낙산 공원과 이화 마을에서 각 조가 발표를 했는데 이때에도 묘사나 자연스러운 설명이 아닌 관성처럼 암기로 그 과제를 마무리했습니다.
7월 8일에는 루피쌤과 1:1 면접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한국의 역사 중 조선 시대의 대표 문화를 소개하고 중요한 이유를 설명해 보세요.”라는 첫 질문을 받았습니다(영어). 랙걸린 스피커처럼 버벅거리다 끝났습니다. 내려오는 기차 밖 풍경이 정지된 느낌이었습니다. “이러면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9월 초까지는 필기에 더 신경을 쓰다가 드디어 10월 30일이 되었습니다. 또다시 루피쌤과 1:1 면접 시간이었습니다. 여자 양궁 국가대표 선발 전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질문에 답은 하는데 긴장해서 그런지 한 톤이 높아졌고 영어도 이미 문법이 무너졌습니다. 내용은 모두 아는데도 연습이 완벽하지 않으니, 모든 게 부자연스러웠습니다.
그러고는 10월 말이 되었습니다. 이쯤에서 선배님들이 격려차 방문해서 경험담을 들려주었는데 이때 들었던 내용 중에서 가슴에 와닿았던 게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님 한 분이 ‘기출문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반복만이 자연스러움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겁니다. 모든 수업에 들어가서 같은 문제를 무의식적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그리고 학원 최종면접이 11월 9일에 있었습니다. 긴장했지만, 대응하는 법도 익혔고 약간의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되돌이켜 보면 진화해 가고 있었습니다. 반복을 하니 자연스럽게 익숙함이 생기고 이야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습니다. Practice makes perfect! 드디어, 루피쌤이 5월에 언급해 주셨던 11월의 자연스러움을 몸으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11월 23일 토요일 오전, 최종 면접 시험실에 입장했습니다.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앉아서 문제를 기다렸습니다. 첫 질문을 받자마자, 제 <의식>과 <무의식>은 따로 대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의식>은 주의 깊게 질문을 듣고 있었는데 <무의식>은 벌써 “땡큐포유어쾌스쳔아이윌~~~~~”라며 앞서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처럼 <의식>이 한 톤은 높여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긴장 때문인지 속도는 1.2배 빨라졌습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꾸준한 연습으로 존경하는 인물인 세종을 언급한 후 한글, 훈민정음해례본, 국립한글박물관, 광화문광장, 관광자원으로 마무리까지 하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질문도 마찬가지로 <무의식>이 대답을 했습니다. 신인의 풋풋한 열정을 알아봐 주셨는지 가운데 면접관분이 이쯤에서 끝내자는 표정으로 면접을 마무리하셨습니다. 다크호스처럼 아직 달릴 수 있었는데…….
이 모든 과정과 결과들은 루피쌤의 열 수를 내다보며 인내력 있게 통합적으로 전달해 주신 지도력 덕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외강내유하신 부원장님의 세심한 배려와 따끔한 일침은 항상 균형감을 느끼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롭게 방문하게 될 학원 후배님들에게는 이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냥 힘을 빼고 두 분께서 요구한 사항들만 충실하게 이행하시면 합격은 크게 걱정하실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단은 ‘자의적 해석’과 ‘불성실 이행’에서 납니다. 결국, 회의와 의심은 정해진 연습 총량의 하루 소화량만 계속 늘릴 뿐이라는 점입니다. ‘신세계’를 찾아 떠나는 ‘세종호’에 몸을 맡기시어 폭풍우가 몰아치는 날과 칠흑 같은 어둠에도 선장님과 부선장님의 지혜를 빌려 편안하게 원하는 최종 목적지에 닿을 수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땡큐”
2024년 11월 25일
추신: 먼 훗날 노랑 은행잎과 빨간 단풍이 뒤섞여 뒹구는 늦가을 어느 맑은 오후에 시청 청사 옆을 지나다가 ‘세종관광통역학원’간판을 보게 되면, <머리>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걸어가겠지만 <가슴>은 한쪽에 쌓아둔 낭만을 꺼내어 회상할 것 같습니다: 월수 오후반 선생님들뿐만 아니라 다른 반 모든 선생님의 웃음소리와 안부 인사들, 그리고 모의 면접 걱정과 ‘합격의 방’의 피드백들, 그리고 무수히 많이 마주 보고 했던 2분간의 대화들. 그것은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 ‘또 다른 화양연화’였다고. 오후에는 왕가위 감독의 <화양연화>를 봐야겠습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Quizas, Quizas, Quizas>가 귓가에서 자꾸 맴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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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우님의 댓글
이재우 작성일
[2024년 12월 18일 감사의 글] 영겁의 시간, 그 7분을 견디는 유일한 방법: 누피샘 壘陂SSAM의 가락지(일명: 스토리텔-링)
때는 BC 194년 철기 시대.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준왕이 진으로 망명하여 "넓은 밭"이라는 뜻의 한밭에 자리를 잡던 시절이었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머루가 가득한 밭에서 살아가며, 가을이면 참나무 통에 머루를 담아 술을 빚고 음주가무를 즐기곤 했습니다. 준왕에게 배운 철기 기술은 조상들에게 전수되어, 훗날 "집행검"이라는 전설적인 무기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그저 단조롭고 반복될 뿐이었습니다.
한밭의 작은 촌락 공도리에 살던 이 씨. 그의 집안은 자두나무가 많은 고을 출신이라는 이유로 "이 씨"라는 성을 얻었고, 그는 세상과 담을 쌓은 채 연금술처럼 신비로운 "반-도체"를 연구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금관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등의 전통에는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자신의 연구와 홀로의 시간을 중요하게 여겼죠.
그러던 어느 날, 부원장 대사로 불리는 윤 대사가 그의 꿈속에 나타났습니다. 대사는 신비한 제안을 건넸습니다.
"한양도성에 있는 세종학원으로 가라. 그곳의 합격의 방에 들어가 하얀 디지털 타이머의 버튼을 눌러라. 단, 그 뒤 7분 동안의 고통을 견디면, 너는 서방정토로 가는 지도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꿈은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이 씨는 고민 끝에 길을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머루주 두 병과 호신용으로 집행검을 챙긴 그는 한밭을 떠나 한양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여정은 험난했습니다. 보름쯤 지나 도달한 첫 번째 관문은 회오리치는 강이었습니다. 거센 물살을 건너기 위해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근처 여인숙에서 단서를 찾은 그는 "강 처사"를 만나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처사를 찾아 헤매던 중, 그는 "포비나"라는 숙박시설의 여주인 박카라와 그녀의 동행자 "국가"의 도움으로 강 처사를 소개받았습니다. 강 처사는 사람들에게 "기본법"이라는 신비한 기술을 전수하며 강을 안전하게 건너게 해주는 인물이었습니다.
강 처사를 만나려면 지역 시장에서 열리는 특별한 모임에 참석해야 했습니다. 거기서 그는 머루주를 걸고 처사와 내기를 벌였고, 운 좋게 승리하며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강 처사는 이 씨의 머루주를 "나폴레옹 꼬냑"이라며 감탄했고, 그의 도움으로 강을 무사히 건넜습니다.
며칠 후, 이 씨는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그 과정에서 "합격의 방"의 비밀을 아는 또 다른 처사, 심슨(혹은 힘쓴)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름조차 제대로 전해 듣지 못해 혼란스러웠습니다. 다행히, 길에서 한 노인을 만난 그는 그가 바로 심슨 처사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처사는 이 씨의 집행검을 보고 크게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검은 NC의 공룡들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다!"
심슨 처사는 이 씨에게 비밀스러운 단서를 남겼습니다. "누피샘의 가락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죠. 누피샘은 "누각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가락지는 침묵을 물리치고 영겁의 시간을 버티는 힘을 준다고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그 위치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디엠지 근처라는 소문도, 안동 하회마을 혹은 수원 화성에 있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모두 풍문에 불과했습니다.
눈발이 휘날리던 어느 겨울날, 이 씨는 마침내 누피샘을 찾아냈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꿰뚫은 듯 잔잔한 물결은 그를 가만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그는 샘 속에서 하나의 가락지를 꺼내어 손가락에 끼웠습니다. 가락지는 마치 그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꼭 맞았습니다.
가락지를 손에 넣은 이 씨는 곧장 세종학원의 합격의 방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심호흡을 한 뒤, 하얀 디지털 타이머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침묵이 그를 덮치려는 순간, 가락지는 자신의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그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 침묵을 물리쳤습니다. 영겁 같던 시간은 찰나로 바뀌었고, 그가 서방정토로 가는 지도가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눈이 떠졌습니다. 탁상용 달력에는 2024년 12월이 적혀 있었고, 주변에는 흩어진 DMZ 관련 스크립트와 엎드려 자며 흘린 침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일장동몽!
“휴~ 다행이다! 그 영겁의 시간을 견디어, 이렇게 다시 돌아오니!”
이 씨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진정한 가락지! 바로 "스토리텔-링"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부원장님의 댓글
부원장 작성일
재우쌤.합격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년간 수업때마다 대전에서 올라오셔서 공부하시고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가신다는게 정말 힘든일이셨을텐데
끝까지 참아내시고 좋은 결과까지 만들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 노력들이 앞으로 관통사 활동을 하실때 분명히
좋은 밑거름이 될거라 믿습니다.
다시 한번 합격 죽하드리고 조만간 현장에서 꼭!! 뵙기바라겠습니다.